| 2010-08-01 - 하나님 앞에선 인간의 부요 |
|---|
최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의 “가라지 세일”에서 45불을 주고 구입한 유리원판 사진이 1919년에서 1930년 사이에 제작된 아담스의 요세미티 흑백 풍경 사진의 원판이라는 감정을 받음으로 2억불이 되어 버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 났다. 돈이다. 세상에 어디 돈을 싫어 하는 이가 있을까? 특별히 요즈음 처럼 물질만능 주의가 되어버린 사회구조 속에서 말이다. 돈이면 다 되는 것이다. 돈이면 용서받을 수 있고, 돈이면 인기며, 명예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돈, 돈, 돈 하면서 말이다. 오늘 말씀 누가복음 12장, 수만의 군중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능력있는 행동에 시선을 집중 하고 있다. 이 때에 한 사람이 그 군중들 사이에서 나오더니 예수님께 말을 한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유업, 그것이 동산이던 부동산이던, 물질이다. 그것을 자신과 나누게 되도록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역시 돈인 것이다. 첫째, 다시 한번 정리 하여 보자! 예수님은 누구신가? 수만의 군중을 헤집고 나와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그에게 예수님이 대답 하신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그는 예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한 것이다. 말씀 하신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여러분은 예수께 무엇을 구하며, 예수를 누구라 생각을 하는가? 구하는 그것을 주실 분이라 생각 하는가? 요한복음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인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려 오신 것이 아닌가? 그러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그에게 구해야 하는 것인가? 둘째, 그것이 아니라 하면서도 사실 우리는 세상의 유업, 물질, 돈을 통하여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넉넉함, 풍성함을 통하여 그 안에서 평안을 찾고, 쉼을 얻고, 먹을 것을 얻고, 마실것을 얻고, 그리고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라, 그저 시들어 버릴 한 순간의 영화인 백합 꽃과 같은 것이라! 일장춘몽이라! 입으로 하면서도, 마음은 그리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출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을 소유한 그날, 생명을 주신 이가, 우리의 생명을 우리에게서 찾아가 버리신다면 어떨가? 생각해 보았는가? 그러므로 셋째, 결론이다. 인간의/세상의 부요, 물질, 유업, 돈에 우리 삶의 목표를 두지 말고, 그것을 넘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할 것이다. “주만 바라 볼 찌라” 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예물, 헌금을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부요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 부요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선 인간의 부요/유업/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이신 하나님을 바라며 세상을 향한 우리의 눈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로 그 생명되신 하나님을 바라 보게 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