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7-11 - 누가 누구의 이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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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 “가까운 이웃은 먼 친척 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웃이 있다. 그가 좋은 이웃이던, 좋지 않은 이웃이던 다들 이웃을 가지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필요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이웃은 누구이며, 여러분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 오늘 말씀은 이 이웃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세가지 좋은 질문을 줌으로 생각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니까?” 율법사의 질문인 것이다. 목적은 진리를 깨달아 영생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그의 심중을 아시면서, 그의 질문/시험에 응해 주시는 것이다. 율법사는 어떤 마음으로 왔던지, 예수님은 그의 이웃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물법에 무엇이라 기록 되어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 하고 있는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맞는 말이다. 예수님 역시 그렇게 말씀 하신다. “네 대답이 옳도다. 그러면 이를 행하라”는 것이다. 이에 두번째,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역시 율법사의 질문인 것이다. 이번 역시 그리 좋은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옳게 보이기 위해 한 질문인 것이다. 첫번째와 그리 다를 것이 없는 질문에 대한 동기인 것이다. 과연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인가? 과연 그러면 여러분과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이에 예수님께서 우리자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여 주신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난다. 빼앗기고, 벗기우고, 매를 맞는다. 이러한 그를 길 가에 그대로 내어 버리고 간다. 아픔의 신음 소리를 내며 길에 쓰러져 있는 그, 그의 앞을 제사장이 지나 간다. 그리고 레위인도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그에게 다가가 주지 않는 것이다. “피하여 지나 갔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마리아인이 여행 중에 그 길을 지나 간다. 그리곤 역시 길에 쓰러져 있는 그를 본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피하여 가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닦아 주고, 싸매준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다음날 길을 떠나며 주막 주인에게 부탁을 한다. “모자르면 내가 오는 길에 다 갚으리라. 잘 보살펴 달라”는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율법사의 이웃인가?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그리고 강도 만난이. 누구인가? 누가 오늘 우리의 이웃인가? 세번째, 이제 예수님이 물으신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 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과연 누가 율법사의 이웃이며,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비슷하지만 그 답의 깊이가 깊다.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강도 만난이, 이들 모두가 다 율법사의 이웃인 것이다. 강도 만난이에게는 사마리아인이 이웃이 되어 주었지만 말이다. 그 차이를 아는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그 속뜻을 발견 하기 바란다. 우리에게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이웃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 모두는 이웃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다 이웃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 과연 우리의 이웃은 우리를 자신들의 이웃이라 생각 하는가? “가서 이와 같이 하라” 가서 좋은 이웃이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