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6-06 - 죽음이 예수님을 만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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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년 사이 젊은 연예인들의 자살로 인하여 이 “죽음”이라는 제목이 여러번 메스콤을 통해 전달 되었으며, 우리로 생각을 하도록 하였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창조 속에 어떻게 죽음이 들어 오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설명하여 주고 있다. 창세기 1장은 만물의 창조를, 2장은 특별히 인간의 창조를 자세히 기록을 한다. 그리고 3장은 어떻게 인간이 죽음에 이르러야만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간격을 두고 5장에 가서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정녕 이루어 졌음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죽음이 바로 오늘 우리가 주목 할 말씀인 것이다. 죽음! 창세기 6장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이 신이 떠나게 될 때 인간은 죽음을 경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죽게 될 때 “영혼이 떠났다” 고 표현 하는 것일 것이다. 바로 이 “죽음”이 오늘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나인이라는 성에 들어 가시게 될 때 한 장례 행렬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모든 장례가 슬픔 가운데 치루어 지겠지만, 이 장례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유인 즉, 과부의 독자가 죽어 치루는 장례이기 때문인 것이다. 과부에게 있어서 독자란 참으로 말로 설명 해 내기가 힘든 그러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독자, 과부의 독자가 죽은 것이다. 이 과부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 서신 것이다. 그리곤 그에게 “울지 말라” 말씀 하시는 것이다. 독자를 잃었는데 울지 말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너무 큰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종종 “그래 실컷 소리내서 우세요” 라는 절망의 위로의 말을 할 때가 있다. 그 슬픔을 위해 울음 밖에는 할 아무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 그에게 울지 말라 하신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이제 곧 과부에게 다가 가신 예수님, 관 앞으로 가셔서 그 관에 손을 대신다. 그러자 그 행렬이 이제 가는 길을 멈추어 서게 된다. 이 때에 예수님의 입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말씀이 나온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런데 무슨일이 일어 났는가? “죽었던 자가 일어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 나셨다.” “울지 말라” 하신 예수님, 이제 그에게 정말 울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하여 주신 것이다. 죽음이 예수님을 만나자, 생명이 된 것이다. 울음이 기쁨이 된 것이다. 어떻게 말인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죽음을 주는 죄의 삯을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요, 나아가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 이시기 때문인 것이다. 태초의 인간의 코에 불어 넣어준 바로 그 생기, 생령이 되게 하는 그 생기가 바로 그 에게서 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신인 성령이시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죄의 삯인 죽음으로 향하는 우리가 오늘 할 일은 무엇인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죽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될때 생명을 얻듯, 우리도 생명을 얻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