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5-02 - 용납하는 자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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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29일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인종에 의해 재판 결정이 불공정 했다는 즉 “인종학대”에 불만이 불씨가 되어 시작된 “LA 사건.” 한인을 중심으로 하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한인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지난 주는 그 일이 있었던 날이 있었던 주요, 특히 아리조나 주에서 새로운 법, “경찰은 누구에게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 할 수 있다”는 법에 사인을 한지 한 주가 지난 주간이다. 뉴스에서는 이곳 저곳에서 새로운 주 법에 대한 대항 들이 보여지며, 어제,오늘 LA에서만 10만이 되는 이들이 반대 행진을 한다고 하고, 정부에서는 이 주 법을 막을 법안에 대하여 고심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하였는가? 또한 한국에서는 지난달에 있었던 천안함의 침몰로 인해 목숨을 잃은 46명의 장병들에 대한 장례식이 있었다. 이 사건들의 시작은 바로 다르다는 것에서 부터라고 말을 한다면 반대 하겠는가? 피부의 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출생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에, 그리고 그 다른 점들을 서로 서로가 용납하지 않은 결과라 말을 한다면 반대 하겠는가? 아니 이러한 다른 점 뿐만 아니라, 생각과 사고, 이념, 종교의 다른 점들이 또한 우리를 나누어 놓았고, 이렇게 나누어진 우리들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를 거부 함으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 났다고 하면 또한 반대 하겠는가? 오늘 말씀 속에도 이러한 거부가 나온다.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었다 하여 고발을 당하는 베드로, 그가 이제 자신의 행동을 변호 한다. 시작은 바로 “나도 당신들과 같은 유대인으로 당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그가 기도 하던 중,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는데, 그 환상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본 그 환상은 바로 보자기 속에 싸여 있는 땅에 네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을 보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음성이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는 것이라. 그 음성에 그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부정한 것들을 먹을 수 없지 않는가?” “나도 그것들을 알고, 지금껏 주욱 지켜오지 않았던가!” 다시금 음성이 그에게 들린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렇게 세번 있은 후 그 모든 것이 하늘로 다시 올라가게 되었는데, 마침 세사람이 그가 묵던 집 앞에 서 있더니, 자신들은 가이사랴에서 내게도 보낸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성령이 그에게 말씀 하시길,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그는 함께 있던 여섯 형제들과 함께 그들을 따라 가게 되어 들어가니 그들에게서 더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되었음은 물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자, 성령, 바로 그 성령, 자신이 일찍이 받은 그 같은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을 그가 똑똑히 목격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그가 고백을 한다.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이러한 베드로의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제 이방인/무할례자들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가 주어졌음을 인정하고, 베드로와 그들을 용납하게 된다. 만약 예수님이 사라리아 여인을, 니고데모를, 어린아이들을,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자신의 우편 십자가에 달린 그 강도를 용납하지 않으셨다면 과연 그들에게 구원이 임하셨을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구원의 말씀이 전파 되었을까? 예수님이 그들을 용납하셨듯, 우리도 이웃을 용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