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3-21 - 지는 것이 이기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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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한다는 것, 싸움을 하게 되면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판갈음 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힘센 아이에게 맞고 들어온 아이를 위로하며 “지는 것이 이기는 거야”라는 말을 하는 부모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이 아이에게는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한다. 물론 부모의 마음속에도 종종, “차라리 때려 주고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이러한 아이들 싸움과 같은 철 없는 싸움을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한다. 목적이 없는, 전혀 영양가치 없는, 어찌 보면 어린 아이들의 싸움 보다도 더 의미가 없는 유치한 싸움을 한다. 그리곤 그러한 싸움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부부싸움이 그런 것 같고, 자존심싸움이 그런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가진것, 지식이 되었건, 물질이 되었건, 힘이 되었건 그러한 것들을 내세우기 위한 싸움들이 그런 종류에 속하는 것 같다. 다 영양가 없는, 의미 없는, 그러나 상처만 깊숙히 남기는 그러한 싸움들이다. 이러한 싸움 외에도 우리는 감히 하나님과도 싸움을 종종 한다. 신앙 안에서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도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율법사들이 그랬고, 선생들이, 그리고 제사장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율법을 통하여, 규례를 통하여, 그리고 자신들의 혈통과 전통을 통하여, 나아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통하여서도 말이다. 구제로 금식으로 자신을 내세워 마침내 하나님께 싸움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통하여 자신들을 승리자로 자랑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들에게 바울이 고백을 한다. “너희의 자랑 거리들이 나와는 비교도 안된다”는 것이다. 나의 자랑 거리를 들어 보라!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 인중의 히브리 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시으로는 교회를 빞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자신 있는 말이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육체의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나와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다시금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러나…” 내가 이렇듯 자랑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나의 자랑은 그리스도 예수 앞에 배설물, 더러운 것들이라.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 진 자라!”는 것이다. 왜? “나의 의는 나의 육체의 잘남, 율법으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로서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 앞에 진/패 자라.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는 진자 같이 되었으나 부활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신 것 같이, 나도 부활을 얻기 위하여 오늘 예수 앞에 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앞에 짐으로 진정으로 이기는 비밀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결심 하여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는가? 이제 지기 바란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지게 될때, 하나님은 우리를 진정한 승리자로 세워 주시는 것이다. 은혜인 것이다. 이 비밀을 깨달은 자는 져도 이긴자라. |